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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과학자 story

막스 프랑크(Planck, Max)

by ◆파란사과◆ 2020. 9. 14.

lanck, Max

 

 Max Plank(1858-1947)는 Kiel에서 태어나 Munich와 Berlin에서 교육을 받았다. Berlin 대학에서는 앞서 Hertz가 그랬던 것처럼, Kirchhoff와 Helmholtz 밑에서 공부하였다. Plank는 원자구조와 무관한 근본적인 현상이였시 때문에 흑채복사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였다. 19세기 후반 그때까지 신비에 싸여 있었으며, 복사가 따라야만 하는 공식을 발견하기까지 6년 동안이나 이에 대한 이해를 위해 힘썼다. 그는 "공식을 발견한 바로 그날부터 이에 대한 진정한 물리적 해석을 위해 애쓰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복사는 hν의 에너지 단위로 만 방출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당시는 열복사의 설명에 실험적으로 장파장에 적합한 레이리 진스의 식과 단파장에 적합한 원의 식이 있었는데, 플랑크는 전 파장의 영역에 실험적으로 적합한 새로운 식을 제창하였다. 이 시의 이론적 기초를 세우기 위해 에너지의 불균형성, 즉 에너지 양자가 가정되었다. 이 양자의 도입은 그 이후 물리학에 결정적인 변혁을 가져온 양자론의 제일보였다. 그의 이 양자설은 그때까지의 모든 물리학의 이론은 근저에 뒤집어엎은것 으로, 이러한 변혁에 영향을 받아 19~20세기경부터 물리학적 관념론이 나타나는 한 원인을 이루었으나 플랑크는 물리학 이론의 객관덕 성격을 의심치 않고 마하(Mach)의 사유 경제설 등에 반대하였다.

 

 Plank 자신은 오래 동안 에너지 양자(quanta)의 물리적 실체에 대해 회으적이었으나, 이 발견으로 1918년 Nobel 상을 수상하였고 지금은 현대물리학의 출발점이라고 생각되어 지고 있다. Plank는 뒤에 가서 "기초적인 양자(quantum)와 고전물리학을 조화시키려는 나의 가망 없는 노력은 수년 동안이나 계속 되었고 또 많은 노력을 쏟아 부었다. ...지금은 작용의 양자가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중요서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다."라고 썼다.

 

 많은 물리학자와 같이 그는 재능 있는 음악가(가끔 Einstein과 함께 연주하곤 하였다.)였으며, 덧 붙여서 등산도 즐겼다. Plank는 히틀러 시대에 독일에 머물렀지만 유태인 과학자에 대한 나치의 탄압에 반대하여 그 결과로 Kaiser Wilhelm 연구소 소장의 지위를 잃었다. 1945년에 그의 아즐 중 하나가 히틀러의 암살 계획에 연루되어 처형을 당하였다. 2차 세계대전 후에 그 연구소는 그의 이름을 본따서 다시 이름지어졌고, 그는 죽을 때까지 그 연구소에서 책임자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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