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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과학자 story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by ◆파란사과◆ 2020. 9. 13.

 

 James Clerk Maxwell(1831-18879)은 Michael Faraday가 전자기 유도 현상을 발견하기 직전에 Scotland에서 태어낫다. 19살에 Cambridge 대학에 입학하여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했다. 아직 학생신분일 때 색채 시각 물리에 대해 탐구하였고, 뒤에 가서 첫 천연색 카메라를 만들 때 그의 아이디어를 사용하였다. Maxwell은 24살 때에 토성의 테가 고체나 액체가 아닌 분리된 작은 물체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보임으로서 과학계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Maxwell은 전기와 자기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하였고, Faraday 와 다른 사람들에 의해 발견된 많은 현상들은 각각 고립된 현상이 아니고 어떤 종류의 밑으로 흐르는 통일성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키워 나갔다. Maxwell의 이 통일성의 확립을 위한 처음 단계는, 1856년에 전기장과 자기장의 수학적 기술 방벙을 개발한 "Faraday의 역선에 붙여서(On Faraday's Lines of  Force)"라는 논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Maxwell은 1856년에 Scotland에 있는 대학에서, 뒤에 가서는 London의 King's College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Cambridge를 떠났다. 이 시기동안 그는 전기와 자기에 대한 생각을 확장하여 전자기라는 하나의 포괄적인 이론체계를 창시하였다. 그가 도달한 기본 식들은 오늘날도 전자기학의 기초로 남아 있다. 이 식들로부터 빛의 속력으로 전파되는 전자기파가 존재해야만 한다고 예측하였고, 전자기파가 가져야만 하는 특성들을 묘사하였으며 빛이 전자기파와 일치한다고 추측하였다. 슬프게도, 그의 작업이 독일 실험물리학자 Heinrich Hertz에 의해 증명되는 것을 볼 때까지 살지 못하였다.

 

 Maxwell의 기체 운동학과 통계역학에 대한 기여도도 그의 전자기학 이론의 기여도에 못하지 않게 심대하다. 그의 계산에 의하면 기체의 점성은 압력에 무관하였고, 이 결론에 놀란 Maxwell은 그의 부인의 도움으로 실험으로 검증하였다. 그들은 또한 점성이 기체의 절대온도에 비례한다는 것도 발견하였다. 이 비례성에 대한 그의 해석은 그때까지 추측으로만 그칠 수밖에 없었던 분자의 크기와 질량을 어립잡는 방법을 Maxwell에게 주었다. Maxwell은 기체분자 에너지 분포를 나타내는 식의 발견의 영예를 Boltzmann과 함께 나누어 가진다.

 

 1865년에 고향인 scotland로 되돌아 왔다. 거기서 연구를 계속 하였고, 수십 년 동안 표준 교과서로 사용되어진 전자기학 논문을 작성하였다. 한 세기가 지난 후에도 계속 출판되고 있다. 1871년 선구적인 물리학자였던 Henry Cavendish의 여예를 기리기 위해 붙여진 Cavendish 연구소(Cavendish Laboratory)를 창설하고 이끌기 위해 Cambridge로 다시 돌아 왔다. Maxwell은 Albert Einstein이 탄생한 해인 1879년에 48세의 나이로 암으로 사망하였다. Maxwell은 50세기의 가장 위대한 이론 물리학자렸고, Einstein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이론 물리학자가 되었다.(Newton이 Gallileo가 죽은 해에 탄생한 우연의 일치와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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