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리(Wolfgang Pauli: 1900-1958)는 비엔나에서 테어나 19세에 특수 및 일반 상대성 이론의 상세한 부분까지 연구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고, 이 이론은 Einstein을 매료시켰으며 이 주제의 연구를 오랫동안 계속하였다. Pauli는 1922년 Munich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28년에 스위스 쮜리히에 있는 Institute of Technology의 물리학 교수가 되기 전까지 Gottingen과 코펜하겐 그리고 함부르크에서 얼마간씩 지냈다. 그는 1925년에 원자내의 전자를 기술하기 위해서는 네 개의 양자수(그중 하나는 무엇인지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은)가 필요하다는 것과 전자들은 어느 두 개도 같은 양자수 조합을 가질 수 없다는 것으 제안했다. 이 베타원리(exclusion principle)는 원자내 전자들의 배열 상태를 이해하는 데에 잃어버린 고리 역할을 함이 판명되었다.
1925년 후반에 두 명의 젊은 네덜란드 물리학자 Goudsmit과 Unlenbeck가 전자가 고유각운동량을 가지고 있음을 보였는데, 스핀이라고 여겨졌다. Pauli의 네 번째 양자수는 스핀의 방향을 기술하는 양자수 이었던 것이었다. 미국 물리학자 Ralph Kronig가 몇 달 앞서 전자 스핀에 대해 착안라고 이에 대해 Pauli에게 말하였었다. 그러나 Pauli가 "이 아이디어를 웃어 넘겼음으로" Krong는 그의 일을 출판하지 않았다.
P,auli는 1931년에 핵의 베타 붕괴시 전자와 함께 중성이고 질량이 없는 입자가 함께 방출된다고 가정함으로서 외관상으로 잃어버려진 에너지였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였다. 2년 후에 Fermi는 그 자신이 중성미자(neutrino; 이태리어로 "미세한 중성"이라는 의미) 라고 부른 이 입자(현재는 미세한 질량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지는)의 도움을 받아서 베타 붕괴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켰다. Pauli는 전쟁 중에 미국에서 지냈으며, 1945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예나 지금이나 물리학자들이 그렇듯 그도 물리학 이외의 학문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결혼 1년만에 이혼한 아내인 Kathe Margarethe Deppner가 화학자와 새살림을 차리자 털썩 주저앉으며 "투우사에게 갔더라도 이해를 하겠는데, 화학자라니..."라고 탄식을 했다고 한다. 전자의 스핀이 대두되었을때 이에 대한 독설을 퍼부었지만 정작 자신도 그에 대한 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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