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위대한 과학자 story

멘델레프(Dmitri Mendeleev)

by ◆파란사과◆ 2020. 9. 18.

 

 멘델레프(Dmitri Mendeleev: 1834-1907)는 시베리아에서 나고 자랐다. 부친 '이반 파블로비치 멘델레예프'는 학교 교장이었고 어머니 유리공장 주인의 딸이었는데, 특히 어머니는 당시 여성들에겐 교육을 받은 기회조차 주지 안않던 전근대적인 사회상에 저항해 오바들의 공부를 후쳐보는 것으로 배웠을 정도로 학식은 물론 사상적으로 깨어있는 인물이었다. 드미트리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부친이 두 눈을 실명하여, 그 시점에선 친정의 유리공장을 물려받아 육아는 물론 경영까지 떠맡았음에도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충실히 해낸 억척스러움도 갖고 있었다.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멘델레프는 공부는 그럭저럭 열심히 했으나 고교 시절까지 공부에 재능을 보이지는 못했다. 드미트리가 15세가 됐을 적에 부친이 투병 끝에 돌아가시고, 유리공장도 불이 나 전소되는 바람에 살림이 어려워지게 되자, 모친은 이 모든 상황들을 타개하기 위해 드미트리와 그 손위의 누나만을 데리고 모스크바로 상경했다. 그리고 고등 교육기관인 모스크바 대학에 자녀들을 입학시키고자 했으나, 당시는 타 지역 출신에 대한 입학 제한 규정이 등이 존재햇던 터라 시베리아 깡촌 출신의 드미트리는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이후에 드미트리는 화학을 공부하러 프랑스와 독일에 갔다. 1886년에 St. Petersburg 대학의 화학 교수가 되었고, 3년 후에는 초기판의 주기율표를 발간하였다. 그 때에는 원자번호 대한 개념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Mendeleev는 그때까지 알려진 원소들(그 시대에는 단지 63개 원소만)이 주기율표 상에서 특성에 따라 합당하게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약간의 원소들을 엄격한 원자질량의 순서로부터 벗어나게 하여애만 하였고, 또 빈자리들을 남겨 두어야만 하였었다.

 

 당시의 같은 화학자들도 같은 방향로 생각하고 잇었으나, Mendeleev는 1871년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빈자리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원자들의 것이라고 제안하였다. 그의 이러한 원소들의 특성에 대한 상세한 예견들이 원소들의 발견으로 충족됨에 따라, 그는 유명해졌다. 19세기 말에 불활성기체가 발견됨에 따라 주기율표는 다시 한번 더 성공을 거두게 된다. Mendeleev 자신은 이 여섯 원소들에 대해 인식하지는 못하고 있었으나, 표에서 완벽하게 새로운 족을 이룬다. 원자번호 101번인 원소를 그를 기려 멘델레븀(mendelevium)이라고 부른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