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어(Niels Bohr: 1885-1962)는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태어나 그의 일생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다. 1911년에 그곳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과학적시야를 넓히기위해 영국으로 갔다. Manchester의 Rutherford 연구실에서 그 때 막 발견된 그때까지의 물리 원리에는 벗어나는 원자의 핵 모델에 접하게 되었다. 원자를 고전물리 만을 뼈대로 하는 이론체계로 이해하는 것은 "희망이 없다"고 인식하였다. 그리고, 빛의 양자 이론이 어떤 방법으로든 원자 구조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느꼈다.
1913년 코펜하겐으로 돌아온 Bohr에게 한 친구가 수소 원자 스펙트럼의 한 계열을 설명해주는 발머(Balmer)공식이 그의 탐색에 적절한 주제일 것이라고 제안하였다. 뒤에 가서 Bohr는 "Balmer 곳ㅇ식을 보자마자 모든 것이 명백해졌다"라고 말했다. 그의 이론을 정립하기 위하여, Bohr는 두 혁명적인 아이디어로부터 시작하였다. 첫 번째 아이디어는, 원자 전자가 핵 주위로 특정한 허용되는 궤도만을 따라서 돈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워ㅕㄴ자는 전자가 허용되는 하나의 궤도에서 또 다른 허용되는 궤도로 옮겨갈때 하나의 광자를 흡수하거나 방출한다는 생각이었다.
존재가 허락되는 궤도의 조건은 무엇인가? 이를 알아내기 위해, Bohr는 대응 원리라 알려지게 되는 원리를 길잡이로 삼았다. 양자수가 매우 큰 경우에는 양자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며, 양자 이론은 고전 물리에서의 결과를 주어야만 한다는 원리이다. 10여 년이 지난 후에야 Louis de Broglie가 움직이는 전자의 파동적 특성으로부터 이 각 운동량의 양자화를 설명하였다.
1916년에 Rutherford 연구소로 되돌아와서 1919년까지 머물렀었다. 그 때, 그를 위해 한 이론물리학 연구소가 Copenhagen에 세워졌고, 죽을 때까지 이 연구소를 이끌었다. 이 연구소는 구제적으로 양자 이론가를 이끌어 드리는 구심점이 되었고, 거기에서의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아이디어들이 교황되고 또 자극과 고무를 받았다. Bohr는1922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1939년에 거대 핵과 물방울(liquid drop)과의 유사성으로부터, 그 때 바로 발견된 핵분열이 어떤 핵에서는 일어나지 않고 왜 특정한 핵들에서만 일어나는가를 설명한 것이 Bohr의 마지막 중요한 업적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동안 New Mexico의 Los Alamos에서 핵폭탄의 개발에 기여하였고, 재전 후에 Copenhagen으로 돌아와 1962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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